이해하거나 혹은 미치거나
책이라는 것은 눈의 확장이라고 말하는 맥루한에게 이렇게 지루하고 지독한 책은 처음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하고싶다. 또 엄청난 시간투자에 비해 많은 것을 얻지 못한 나에게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미디어는 없다.
삶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미디어로 본다면 그것은 그것 자체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미디어의 이해는 1부(미디어는 메시지다, 핫미디어와 쿨 미디어, 과열된 미디어의 역전, 기계 애호자- 마취된 나르시스, 혼성에너지- 위험한 관계, 번역자로서의 미디어, 도전과 붕괴- 창조성의 응보)등으로 역음으로 미디어 대한 기본이론을 전개하고 2부(구어, 문어, 도로와 종이의 루트, 숫자, 옷, 집, 화폐, 시계, 인쇄, 만화, 인쇄된 문자, 바퀴, 자전거, 그리고 비행기, 사진, 신문, 자동차, 광고, 게임, 전신, 타자기, 전화, 축음기, 영화, 라디어, 텔레비전, 무기, 자동화)에서는 26개의 미디어를 분석하고 있다.
20세기를 한단어로 말한다면 다름이 아닌 반복(reaction), 기계의 시대이다.
영화 모던타임즈에서는 시계의 발명으로 제약과 구속에 당하는 인간상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단일화된 단순화된 분업, 반복으로 인간성 상실은 보여준바 있고 실제로 세상은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를 향해 닻을 올렸다.
그리고 21세기 세상은 변했다. 21세기는 다름아닌 포스트모던니즘이라는 탈근대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단일화된 상품보다는 다양한 높은 부가가치의 창조적인 상품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럼 1964년 처음 발간된 이 책이 38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의 읽히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무엇때문일까? 다름아닌 오늘의 현실에 훨씬 큰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 활판 인쇄술 이전으로 돌아가 제작자가 소비자를 겸한 시대로 복귀할 것이며 일정한 주제로 순서를 찾아 구성되는 선형적인 책은 차츰 사라질 것'이라는 맥루한의 예언이 네트의 하이퍼텍스트(hypertext)를 통해 현실로 나타나고, '공간의 소멸'과 '지구촌(global village)'에 대한 그의 유토피아적 신비주의가 인터넷을 통해 구현되며, '우리는 도구를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도구우리를 만들것이다'라는 경구가 사실로 드러나는 오늘의 현실 자체가 맥루한 르네상스를 가져온 직접적 원인일 것이다.
맥루한이 다시 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네트의 시대, 디지털 시대를 해명하기 위한 실마리를 '미디어의 이해'에서 찾을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이 말은 미디어 자체는 메시지다라는 말과 동일하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많은 잡담들과 은유적 표현, 객관적 논술을 거부함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혼돈을 준다. 전기부터 시작해서 '로미오와 줄리엣' 세익스피어의 조용히! 저 창문으로 스며 나오는 불빛은 무엇인가? 무엇인가 말하고는 있으나 아무말도 없다.
'오델로', '리어왕'등을 통해 인간의 상호 관계와 행동의 척도나 형태를 만들어내고 제어하는 것이 미디어이므로, 앞서 말한 사실은 '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
라디오는 핫미디어로 일방적으로 주입하며 많은 정보량를 가지고 있으며 정세도가 낮은 것을 이야기하며 전화는 말은 많지만 적은 정보량과 높은 정세도를 말한다. 정세도란 참여도라 생각해도 좋다.
...과열된 미디어의 역전
마취된 나르시스
어제 TV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TV나 신문을 통해 보는 정보 혹은 지식들이 진실된 것을까? 예전에 민주화, 노동운동을 8.15을 말하던 TV나 신문은 옳다른 소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이라 믿었던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디지털문명에 피해자로서 지금 보이못하고 듣지못하는 세상을 사는지도 모른다.
모든 매체(미디어)는 인간 능력의 확장이다.
집은 우리의 체온 조절 기구의 확장이고, 책은 눈의 확장이고,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며, 옷은 피부의 확장이다...
즉, 인간능력의 확장인 매체는 그것 자체로써 메시지를 갖는다. 단지 무엇과 무엇을 연결해 주는 의미없는 존재가 아닌 매체 자체가 메시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책에서 그는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고, 라디오처럼 청각만 발달시키다던지, 책처럼 시각만 발달시킨다던지하여 인간의 감각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인간의 오감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을 예견했다. 그것이 혹 인터넷 아닐까?
낯과 밤의 보이지 않는 환타지세계로의 연결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안겨주는 동시에 세상을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동일시된 세계로 연결해줄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삐삐가 우리의 삶을 구속했듯 세상의 변화는 더 큰 어둠의 그림자로 우리를 덮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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