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확인 한번 하지 않는 영수증을 모으고, 보지 않는 책을 구입해서 책장을 꾸미고 신문을 스크랩해놓습니다.
어느 날 문득 네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이 사라지는 날이면 헛탕을 칠지 알면서도 기어이 집을 뒤집어 놓고 맙니다.
집착이겠죠!
증명하거나 기록하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도 어쩜 이 병적인 집착때문인지 모릅니다.
소유욕 강하고 욕심만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나의 것은 지키는 것과 가지질 수 없는 것은 기록하는 일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작년은 공지영 작가의 한해였습니다.
1년 내내 베스트셀러를 코너에서 책이 내려올 줄 몰랐습니다. <즐거운 나의 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괜찮다, 다 괜찮다> 잔잔한 글로 이야기하듯 풀어가는 그의 글에서 감동이 느껴집니다.
습관처럼 책에 줄을 긋고 메모를 해보았습니다.
혹 저작권 침해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나의 삶」, 체 게바라
사랑을 위해 아내를 버린다면 사회적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어(.....) 사회투쟁과 문화혁명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상황입니다. 고통과 인생이란 항상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고통이 잠시 사라질 때가 있다면 단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문입니다. ‘오만’과 ‘냉소주의’는 깨어 있는 동안 현실을 고통을 잊게 해줄 뿐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가장 어렵고 궁극적인 것이며 최후의 시련이요, 다른 모든 일이란 실로 그 준비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일이란 한결 높고 고독한 독거입니다.
-루쉰 「루쉰의 편지」
“고독과 시간이 정신을 흐리게 하거나 심장과 영혼을 무디게 하지 않도록 회상으로 훈련을 하네. 세상에는 칼을 사용하지 않지만 완벽하게 준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결투가 존재하기 때문일세. 그것이 가장 위험한 결투지. 그러나 언제고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네.”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인간과 운명, 이 둘은 서로 붙잡고 서로 불러내서 서로를 만들어내 간다네. 운명이 슬쩍 우리 삶으로 끼어든다는 말은 맞지 않아. 그게 아니라 우리가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오고, 또 우리는 더 가까이 오라고 청하는 걸세 .”
“이렇게 사는게 힘들어.”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정열은 그렇게 심오하고 잔인하고 웅장하고 비인간적인가? 그것은 사람이 아닌 그리움을 향해서만도 불타오를 수 있을까? 이것이 질문일세. 아니면 선하든 악하든 신비스러운 어느 한 사람만을 향해서,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정열적일 수 있을까? 우리를 상대방에 결합시는 정열의 강도는 그 사람의 특성이나 행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일까? 할 수 있다면 대답해 주게."
그는 소리 높여 말한다. 마치 대답을 재촉하는 듯이 들린다.
" 왜 나에게 묻나?"
상대방은 조용히 말한다.
"그렇다는 것을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산도르 마리아 「열정」
살아야 했다구, 알아들었어?
물론 너나 나나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었겠니?
그래도 살아야 할 걸 그랬다구.
뭣 때문이냐구? 아무것 때문에도 아니지
그냥 여기 있기 위해서라도
파도처럼 자갈돌처럼
파도와 함께 자갈돌과 함께
빛과 함께
모든 것고 다 함께
-「인생의 어떤 노래」앙드레 도텔
나이를 먹어 좋은 일이 많습니다. 조금 무뎌졌고,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그렇습니다. 이젠,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설사 조금 오래 걸려도, 그것이 지나갈 것임을 알게 됩니다. -p43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붓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빈집」기형도
고통의 핵심
고통의 잔해
왜 하필 나야?
추위에 강한 나무가 있고 더위에 강한 나무가 있듯이, 물이 많아야 하는 나무가 있고 물이 적어야 하는 나무가 있듯이 우리는 모두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고 나자 저는 저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p48
예술가라는 존재들은 낚싯대의 찌처럼 춤을 추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아무리 상식적이고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생의 어느 봄날 한 번쯤 오뉴월의 훈풍에 아파서 올 때가 있는 것이니까요. 마치 혼자서만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것같이 외로울 때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럴 때 너만 그러는 것은 아니야, 하고 다가가는 그런 존재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이 자본주의와 세계화와의 효율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지만, 우리가 여전히 삶을 택하게 하고 인간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오스카 와일드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한 번쯤은 예수와 함께 엠마오로 걸어가야 하는데, 그럴 때 바로 오래도록 아픈 숙명을 유전자에 지니고 사는 예술가들이 그와 함께 그 길을 걸어준다는 것을-p49
느리고 단순하고, 가끔 멈추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보헤미안처럼 그렇게 정처없이 떠돌고 싶은 그런 충동
우울에 잠기며, 홀로 외로이 육교를 건너간다. 일찍이 그 무엇에도 타협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안이하지 않던 이 하나의 감정은 어디로 가야 하나, 석양은 지평에 나직하고, 환경은 분노에 타고 있다. 모든 것을 증오하고, 분쇄하고, 반역하고, 조소하고, 참간(斬奸)하고 적개하는, 이 하나의 검은 그림자를 망토에 감싼 채, 홀로 외로이 육교를 건너간다. 저 높은 가공의 다리를 건너, 아득한 환등의 시가지까지.
-「육교를 건너다」, 하기와라 사큐타로
사람이 일생에서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경험을 한 단일품목이 아마 우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을 잃어버리는 일이 꼭 나쁜 일은 아니겠지요. 기억 위로 세월이 덮이면 때로는 그것이 추억이 될 테니까요. 삶은 우리에게 가끔 깨우쳐줍니다. 머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주인이라고. -p74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후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해지려고 애쓰다 보면 언제나 외롭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럴 때 그 외로움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우리는 한참 웃었습니다만 외로우니까 글을 쓰고, 외로우니까 좋은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어떤 시인의 말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p87
길 잃고 헤매는 그 길도 길입니다
지금 나의 화두이자 희망은 ‘일어나 걷는 자는 동사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문장입니다.
꽃 사이 한병 술,
친구 없이 혼자 든다
술잔 들어 달님을 청하니
그림자랑 세 사람이 된다
달님은 마실 줄을 모르고
그림자는 흉내만 내는구나
잠깐 달님이랑 그림자랑 함께
즐기자 이 봄이 가기 전에,
내 노래에 달님은 서성거리고
내 춤에 그림자는 흐늘거린다
취하기 전에 함께 즐겁기만
취한 다음엔 각각 흩어지리
영원히 맺은 담담한 우정
우리의 기약은 아득한 은하수
-「월하독작(月下獨酌)」, 이백
둘이서 대작하는데 산꽃이 피네
한 잔 한 잔 또 한 잔을 마시다 보니
나는 취하여 잠이 오니 자네는 가게
내일 아침 생각나면 거문고 안고 다시 오게
-「산중여유인대작(山中輿幽人對酌)」
그렇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러나 당신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당신의 생은 놀랍게 변할 것이다.-p111
폭력이라는 것의 실체를 그때처럼 오래도록, 일상적으로, 차근차근, 아무런 단죄의 이름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생생하게 체험한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p123
'내가 만질 수 없었던 것들, 앞으로도 내가 만질 수 없을 것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가장 어렵고 궁극적인 것이며 최후의 시련이요, 다른 모든 일이란 실로 그 준비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일이란 한결 높고 고독한 독거(獨居)입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릴케
창문을 내는 이유
인간들은 내개 집에다 창문을 만들지요. 너무 작아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창문 말입니다. 심지어 이 공기 탁한 서울에서 나무 한 그루 없는 삭막한 길로라도 사람들은 창을 내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인간들은 말이지요, 모두가 드리워서 그래요. 그리워서 창문을 만드는 거예요. 대문처럼 크게 만들면 누가 들어오니까 작게, 또 대문처럼 크게 만들면 자신이 못 견기고 아무나 만나러 나갈까 봐 작게, 그렇게 창문을 만드는 거예요. 몸으로는 만나지 말고 그저 눈으로 저기 사람이 사는구나, 그림자라도 서로 만나려고 아니 그람자만 얽히려고 그래야 아프지 않으니까, 그림자는 상처받지 않으니까…
-「착한 여자」공지영
도스토예프스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 나의 고통이 가치를 상실하는 것뿐이다” 저의 두려움도 하나입니다. 나의 고통이 나를 무디어지게 만드는 것, 다 그런 거라고 쉽게 말해버리게 하는 것, 이 세상에 사랑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해버리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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